지휘자란 악보 속 진리 탐광자(探鑛者) 지휘자 파보 예르비

 Ireview

30/12/2022

위대한 작품에 대한 ‘낯설게 보기’의 마에트스로

발굴이란? 1947년 베두인 소년이 양을 찾으러 다니다가 어두운 동굴에 돌을 던졌다. 굴속에서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호기심에 굴안으로 들어간 소년은 케케묵은 몇 개의 양피지 뭉치를 발견했다. 2천 년 가까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성경의 양피지 사본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1951년부터 6년간 쿰란 주변 지역 일대에서 대탐사가 이뤄졌고 쿰란 일대 11개 동굴에서 800여 개에 달하는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에스더서를 제외한 전 구약성서들이 햇빛을 보았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굴은 이런 것이다. 그런데 음악계에도 성경의 발견만큼 중요한 발굴 사건들이 존재한다. 멘델스존은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발견했고, 파블로 카잘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을 발견해 첼로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처럼 미처 눈으로 보지 못했던 실체적인 사물을 찾아내는 발굴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던, 아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의미’를 지혜의 확대경을 통해 영혼의 정치한 핀셋으로 끄집어내는 발굴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클래식 음악의 묘미는 작곡가가 다양한 음표의 암호로 숨겨놓은 메시지를 찾아내는 데 있다. 우리가 늘상 듣고 있는 베토벤의 작품은 과연 그게 전부일까? 그 수많은 하이든의 교향곡은 대체 어떤 의미들을 담고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이미 익숙한 작품을 낯설게 보는 지휘자를 좋아한다. 매너리즘이 아니라 앙리 뒤샹의 변기 ‘샘(Fountain)’처럼 창조적 ‘낯설게 보기’의 달인 말이다.

최근 한국에 내한한 지휘자 중 우리는 파보 예르비를 주목했다. 그가 ‘하이든’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파보 예르비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지난 12월 11일 LG아트센터 서울, 12월 13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12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연주를 펼쳤다. 세 차례의 모든 내한 공연에서 하이든 교향곡 96번 ‘기적’을 선보였다. 하이든을 향한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2022년 마지막 내한 공연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마지막 곡을 하이든 교향곡 104번 ‘런던’선정해, 2022년 겨울밤을 하이든으로 화려하게 수 놓았다.

워낙 시간을 촘촘히 쪼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기에 긴 인터뷰는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2022년 마지막 내한 공연을 앞둔 12월 15일, 리허설에 앞서 그가 작품에 대해 숙고하고 복기할 1시간을 빼앗았다. 그럼에도 시종 따뜻한 미소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하이든에 대해 일신할 만한 이야기를 진설해 주었다.

작품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새로운 인물에도 관심

그런데 그가 발견한 것은 음악만이 아니었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통역해 준 작곡가 겸 지휘자 최재혁과 ‘인연’이라는 새로운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다니엘 하딩’ 하면 함께 떠오르는 세계적인 지휘자가 있다. 사이먼 래틀이다. 하딩이 맨체스터 음악학교에 다닐 때 그가 보낸 지휘 테이프를 보고 천재적인 지휘 재능을 발견하면서 하딩의 지휘 경력은 시작되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현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지휘 꼭지를 틀어준 것이 사이먼 래틀이었다. 이처럼 지휘의 계보를 잇기 위해서는 재능 있는 지휘자를 발견해낼 의무가 있다. 그것이 인류의 아름다움을 계승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파보 예르비 역시 위대한 작품들의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일과 함께 본인이 지휘 아카데미를 개최해 재능 넘치는 지휘자들을 발굴해나가고 있다.

우연일까? 한국의 젊은 지휘자 최재혁은 다니엘 하딩을 발굴했던 사이먼 래틀과 파보 예르비 모두에게 발굴돼 다양한 무대에서 선율을 직조했다. 사이먼 래틀은 아카데미에서 최재혁을 발견, 지난 2018년 9월 6일 루체른페스티벌에서 슈톡하우젠의 ‘그루펜’을 최재혁과 지휘한 바 있다. 파보 예르비는 지난 7월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페르누뮤직페스티벌에서 역시 최재혁의 재능을 발견,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유혹의 비밀왈츠’를 지휘하도록 한데 이어 지난 11월 취리히 톤할레 지휘 아카데미를 통해 슈만 교향곡 1번 1악장 지휘를 맡기기도 했다. 그런 인연으로 인해 이번 인터뷰도 지휘자 최재혁의 통역 도움 하에 진행되었다.

하이든 교향곡 96번 기적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김종섭: 마에스트로께서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전쟁과 폭력에 반대한다고 밝히며, 전쟁은 개인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사건이라고 비통해했습니다. 또 피해자를 돕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폭력과 침략을 실패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밝히셨습니다. 
이번 연주곡 중에는 하이든의 교향곡 ‘기적’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등 지금처럼 혼란한 시기에 기적같이 세계 평화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인가요?

예르비: 그러고 보니 의미가 좋네요. 사실 그런 의미를 담고 선곡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들어보니 그런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요(웃음). 저는 세계 평화를 원하고 있고, 전쟁 없는 평화의 세계가 빨리 오길 누구보다도 바라고 있습니다. 
그동안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베토벤, 슈만 등 많은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해 왔습니다. 저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작곡가에 집중합니다. 오롯이 그 작곡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연장선으로 이번 선곡들은 사실 작곡가 하이든을 재조명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동안 베토벤, 슈만, 브람스 등을 연주해온 것도 이번 하이든 교향곡을 연주하기 위한 하나의 여정이었습니다. 왜냐면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듣는 교향곡의 뿌리는 하이든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하이든은 높게 평가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하이든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후하지 않습니다. 대중적으로 하이든 교향곡은 ‘boring’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베토벤은 웅장하고, 슈만은 로맨틱하다고 여깁니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하이든의 교향곡은 지루하고, 밋밋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하이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는 당시 하이든이 곡을 만들 때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와 곡에 대한 천착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하이든의 ‘기적’과 ‘런던’은 그동안의 그런 생각들을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저희는 이번에 하이든 곡을 ‘가장 하이든답게’ 해석하고 연주할 겁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목표로 안내하는 것

김종섭세계적인 지휘자의 지휘 철학이 궁금합니다. 지휘자의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르비: 간단히 말씀드리면 지휘자는 연주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역할입니다. 하나의 통일된 시각을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오케스트라에는 다양한 악기의 다양한 연주자들이 한곳에 모인 집단입니다. 연주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맡은 부분의 연주를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서 연습하고 연주합니다. 
하지만, 모두 그렇게 열심히 연주한다고 해서 아름다운 소리를 잘 발현하고 소화하는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방향이 맞지 않으면 오히려 우왕좌왕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음악으로 통일성 있게 모을 수 있는 사람은 지휘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휘자는 이런 다양한 연주를 모두가 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driving’해 주어야 합니다. 이때 그 목표는 ‘곡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연주를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연주자들은 이런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휘자는 공부하고 연구해서 연주자들의 곡 방향을 이끌어줘야 합니다. 일례로 아무리 리허설 때 완벽하게 준비해도 공연 때 번뜩이는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이 번뜩이는 주관을, 어떻게 드라이브해서 이 악단을 이끌어나갈지는 지휘자가 결정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지휘자는 순간순간 내가 원하는 걸 알고, 또 그것을 잘 전달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유기적으로 이뤄질 때, 단원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해석이 최대로 발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개의 오케스트라 각각의 특성 살려 지휘

김종섭: 선생님께서는 이번에 내한한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직접 창단했고, 지난 9월 내한한‘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2019년부터 수석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등 3개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계십니다. 한 지휘자가 3개의 오케스트라를 이끈다면, 오케스트라의 성격도 다채로울 수 없다는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파보 예르비 지휘자가 이끄는 3개의 오케스트라는 비슷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 비결을 귀띔해 주실 수 있는지요?

예르비: 여러 악단을 지휘하는 지휘자로서 가장 중요한 점은 각 오케스트라마다 특성들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내가 의도하는 바대로 이끌겠다는 고집이 아니라, 그 오케스트라만이 가진 고유한 특색 위에서 일을 하는 것이지요. 오히려 작곡가들만의 사운드를 중점적으로 생각합니다. 해당 오케스트라의 특성과 어울리는 작곡가를 선정한다거나, 작곡가의 특성 중 오케스트라와 어울리는 부분을 어떻게 극대화할까 처럼요. 즉, 오케스트라가 가진 특유의 사운드 위에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오늘 연주하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은 50명 이하의 작은 오케스트라입니다. 작은지만 응집력있는 사운드와 촘촘하고 세밀한 합주력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규모와 특성상 원전 연주를 가까이하는 악단으로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슈만의 곡을 연주할 때는 오케스트레이션보다 담백한 연주를 하는데 집중합니다. 그러면 슈만만이 가진 로맨틱한 느낌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반면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는 규모가 큽니다. 캄머필하모닉보다 더 웅장한 곡을 선곡할 수 있고, 다이내믹한 분위기를 이끌어 수 있습니다. 굉장히 풍성한 소리가 매력적입니다. 
이 두 오케스트라는 제가 부임하기 전부터 이미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이들의 강점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이끌어 내는 역할에 중점을 둡니다. 모든 것을 제 입맛대로 바꾸는 것이 좋은 지휘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들과 함께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이들과는 성격이 또 다릅니다. 에스토니아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패르누 뮤직 페스티벌 상주 음악단체로 저와 아버지 네메 예르비, 여동생 크리스티안 예르비와 활동하고 있습니다. 단원들은 평소에 다른 오케스트라나 연주 단체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에스토니안 오케스트라 활동은 휴가를 반납하고 옵니다.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즐기죠. 밝은 에너지, 특별한 색깔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매력을 전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연주자들을 만나면 함께 하자고 제안하곤 합니다. 세계 이곳저곳을 돌면서 지휘하면 잠재력을 가진 연주자를 많이 만나는데, 훌륭한 연주자라도 색깔이 맞지 않으면 단원으로 뽑지 않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분위기와 잘 맞을 수 있느냐입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3개 오케스트라의 개성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곡 선정과 해석을 오케스트라에 맞게 하기 때문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파보 예르비가 생각하는 좋은 오케스트라

김종섭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좋은 오케스트라는 어떤 것입니까?

예르비: 좋은 오케스트라의 시작점은 오케스트라 안에서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것입니다. 각자 노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죠. 지휘자가 없더라도, 앞에 있는 악보를 통해 서로 듣고 연주하는 것이 좋은 오케스트라의 기본입니다. 음악가들이 쉽게 범할 수 있는 오류인 자신의 음악에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그림인 하모니를 위해 보고 들으며 함께 호흡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모니가 전부는 아닙니다. 하모니를 넘어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목표점이 있어야 합니다. 음악이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하모니를 이뤄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향해 함께 가는 것’이 충족될 때 비로소 완성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때 한 가지의 통일된 시각, 해석을 오케스트라에 전달하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입니다. 오케스트라에 지휘자의 해석이 주어지지 않으면 하나로 모아지기 어렵습니다. 반면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 대한 이해 없이 목표를 제시하고 끌고 가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혼자만 달려가게 되면 낙오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음악’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오케스트라란 지휘자와 함께 호흡하며 음악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김종섭이번 하이든 시즌 이후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예르비: 앞으로도 하고 싶은 작곡가들은 많습니다. 작곡가에 집중하다 보면 작곡했던 시절의 이야기, 감정들이 느껴지게 됩니다. 그가 진정으로 음악을 통해서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음악을 통해서 전달합니다. 저는 이런 작업이 정말 좋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평가된 작곡가를 재평가 받기도 하고요. 고평가받고 있던 작곡가는 그동안의 해석이 아닌, 곡의 새로운 면모를 소개하는 것도 묘미입니다. 
이건 비밀인데요(웃음). 다음 작곡가는 슈베르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새로운 면모를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김종섭: 이번 인터뷰를 통해 지휘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지휘자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최재혁 지휘자는 대한민국에서 차세대를 이끌어가는 젊은 지휘자로 주목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에스트로와 최재혁 지휘자는 인연을 쌓아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재혁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예르비: 대한민국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처럼 저 역시도 최재혁 지휘자를 좋아하고 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는 최 지휘자와의 유대가 깊습니다. 에스토니아, 지휘 아카데미 등 지휘에 관해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일단, 그는 재미가 있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갑니다. 지휘에 대한 열정과 진심이 느껴집니다. 지휘에 대해 고민하는 그 자세가 그를 세계적인 지휘자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그는 정말 매력적인 지휘자입니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지휘자가 될 날이 머지않아 보입니다. 클래식계의 전도유망한 지휘자로 우뚝 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최재혁 지휘자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은 파보 예르비는 이제 내년 시즌에서 슈베르트 작품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라는 별칭에도 불구하고 누구든 만나기를 요청하면 손사래를 치는 법이 좀처럼 없는 마에스트로. 인터뷰 내내 따듯한 그의 품성을 느꼈기에 내년에 내한하면 또 한 번 만나볼 것을 약속했다.

지휘자 파보 예르비는 누구인가?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라는 별칭을 가진 파보 예르비(Paavo Järvi)는 에스토니아 출신 지휘자이다. 아버지는 지휘계의 거장 네메 예르비(Neeme Järvi)이며, 형제로는 왕성히 음악 활동 중인 지휘자 크라스티안 예르비(Kristjan Järvi)와 플루티스트 마리카 예르비(Maarika Järvi)이다. 파보 예르비는 1962년 발트 3국 중 한 곳인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났으며, 탈린 음악대학교에서 타악기와 지휘법을 배웠다. 1980년 아버지를 따라 구소련의 에스토니아를 떠나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을 지낸 바 있는 막스 루돌프(Max Rudolf)와 오토-베르너 뮬러(Otto-Werner Mueller) 교수에게 지휘법을 사사했고,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지휘자 강습회에서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에게도 배움을 얻었다.

차곡차곡 배움을 쌓은 그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스웨덴의 말뫼 교향악단(Malmö Symphony Orchestra) 수석지휘자, 1995년부터 1998년까지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Royal Stockholm Philharmonic Orchestra)에서 지휘자 앤드류 데이비스와 함께 공동 수석지휘자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도 있으면서 세계 무대를 누볐다. 이후 2001년 미국 신시내티 교향악단(Cincinnati Symphony Orchestra)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해 “예르비에 의해 신시내티 교향악단이 세계 음악지도에 강력하게 등장했다”라는 극찬을 받으며 신흥 명문으로 끌어올리는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2003년에는 ‘피렌체 5월 음악제’에서 로열 콘서트헤보우와 함께 베토벤의 ‘피델리오(Fidelio)’를 지휘하며 오페라 지휘자로도 데뷔했다.

2004년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취임했으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파보 예르비는 탁월한 음악성과 온화한 리더십으로 정단원 50명 이하의 작은 오케스트라 도이치 캄머필과 베토벤 교향곡을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세계 최고의 캄머(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2006년 HR교향악단(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수석지휘자로 취임해 2013년까지 활동한 바 있으며, 파리 오케스트라(Orchestre de Paris) 음악감독으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는 NHK 교향악단 수석지휘자를 역임했으며, 2020년부터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로열 콘체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런던 필하모닉, 뮌헨 필하모닉 등 명문 악단들도 정기적으로 객원 지휘하고 있다.

왼쪽부터 지휘자 파보예르비, 통역을 맡은 지휘자 최재혁, 월간리뷰 대표 김종섭

본국 에스토니아 음악 발전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매년 여름 열리는 패르누뮤직페스티벌의 상주 음악단체 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창단했으며, 현재까지도 네메 예르비, 여동생 크리스티안 예르비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에스토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아르보 페르트, 레포 수메라, 에르키 스벤 튀르, 에드아르드 투빈 등 에스토니아 출신 작곡가 작품 소개하고 연주한다.

이러한 공로로 에스토니아의 문화부 장관에게서 ‘쿠르투우르카피탈 상’을 대통령에게서 ‘백색 별(white star, 승리 훈장)’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의 음악 활동은 세계에서도 인정받아, 2012년 11월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 문화 훈장을 수여받은 바 있다. 또한 예르비는 청소년 음악교육에도 관심 갖고 있으며, 재능 있는 지휘자를 발견해 내는 데에도 힘쓰는 등 차세대 음악가를 키우는 데에도 앞장 서고 있다.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파보 예르비는 한국 내한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2010년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과의 내한을 시작으로 파리 오케스트라,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등과 여러 차례 방한해 뛰어난 연주를 들려줬다. 2022년에는 여름, 겨울 두 차례 내한했다. 8월에는 에스토니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첫 내한 공연을 이끌고, 12월에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http://ireview.kr/13830


Comments

Popular Posts